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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이 희망으로 바뀌었어요
등록일 : 2010.12.25 07:05
조회 : 3,645

최혜진(42세,여)(가명)


내가 ‘자미원’이란 이름을 처음 들은 곳은 우리아이 기(氣)치료를 위해 다니던 병원에서였다. 나의 딸아이는 네살 때 재생불량성 빈혈에 걸려 4~5년 이상 투병생활을 했었다. 백혈구 수치가 낮아 수시로 감염의 위협에 시달렸고, 혈소판 수치가 낮아 멈추지 않는 코피 때문에 날밤을 새운 일이 허다했다.

병원에서 골수자극제로 쓰는 스테로이드는 여드름과 다모(多毛)증을 일으켰고 남성호르몬에 가까운 약이라 갱년기 아줌마들처럼 온몸이 화끈거려 외출하기도 어려웠다. 또한 간에 부담을 주어 간출혈로 입원하기까지 했었다. 식이요법도 했었고, 잘 낫는다는 약국약, 건강보조식품, 수지침, 파동수, 천도제, 다우징스쿨까지 다녔어도 소용이 없어 결국 골수이식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골수 찾기도 어려워 제대혈 이식을 하게 되었는데 1차에 생착에 실패하고 5달 동안 무균실 생활 끝에 2차 이식을 하여 다시 바깥 공기를 쐴 수 있게 되었다.

무균실 안에서의 생활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하루하루 피를 말리며 수치 뜨는 것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그러다 감염으로 인한 패혈증은 마지막까지 각오하게 만들었다. 중환자실을 두 번씩 오가며 우리는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운명 앞에 너무나 무기력했다. 그래도 그 애가 살아난 건 할머니를 비롯한 가족들의 끈질긴 정성과 기도 때문이 아닌가 싶다. 어찌되었거나 우리 애는 무균실에서 나왔고, 비록 그 후 1년여를 한달 걸러 한번씩 입원을 할지언정 집에 다시 올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식을 위해 오랜 기간 쓴 병원약으로 인해 오장육부는 다 망가졌고, 피골이 상접한 다리는 굳어 걷지 못했다. 눈과 귀마저 나빠졌다. 어린 나이에 그만한 고생을 한 아이도 드물 것이다. 우리 가족은 병원치료 뿐만 아니라 무언가 딴 방법을 찾아 보자고 하여 다닌 곳이 기치료를 하는 병원이었고, 그 곳을 통해서 ‘자미원’을 소개받았다.

그것은 아주 우연한 일이었다. 그 동네는 처음 가 본 곳이었고, 자미원을 알려준 분은 생면부지의 나에게 무조건 한 번 가보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 말을 해 준 분이 허튼 말을 하실 분이 아닌 것 같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아 가보게 되었다. 처음 자미원에서의 상담은 다른 점(占)집이나 절에서 하는 말과는 무언가 다른, 이 삶의 질곡의 미로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보았다고나 할까 그런 느낌이었다.

그 후 우리 애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동안 나는 병원에서 자미원으로 수련을 다녔다. 수년간의 긴장과 스트레스 속에서 심신이 매우 지쳐있었던 나는 자미원에서 몸과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었고,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삶을 보게 되었다. 삶의 헝클어진 실타래를 다시 감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수련이 끝날 즈음 나는 인생의 보물지도를 얻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동안 우리 아이의 건강도 많이 좋아졌는데, 그 이유는 꾸준한 병원치료 뿐만 아니라 내가 자미원 수련을 받으면서 나의 편안함과 따뜻한 기운이 우리 아이에게 잘 전달이 되어서 우리 아이의 건강이 많이 좋아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지도는 지도일 뿐이다. 지도 속의 보물을 찾느냐 못 찾느냐는 지금부터 계속되는 나의 삶 속에서 결정될 것이다. 그렇지만 삶에 대한 올바른 지도를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삶에 대한 깨달음을 준 자미원은 내게 등대와도 같은 존재이다. 몇십년 배운 모든 학문과 종교를 넘어서는 깨달음인 것이다.

자미원을 소개해준 분이 내게 ‘언젠가 이런 고통을 준 아이에게 고마워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분에게 정말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리고 내게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 해 준 우리 아이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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