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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수련, 진정한 나와 만나 꿈을 향해 날개를 펴다~
등록일 : 2020.01.22 21:11
조회 : 113

깨달음 수련, 진정한 나와 만나 꿈을 향해 날개를 펴다~

 

깨달음 수련

제목만 듣는다면 무언가 막연할 수도 있고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이 저처럼 완벽주의자라면 혹시나 수련 과정속에서 선생님께 지적을 받으면 두려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 또한 깨달음의 수련 과정에서 몇 번이나 얼굴을 붉히기도 했고 포기하거나 도망가고 싶은 순간도 있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끝까지 이 과정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저의 자존심보다 자경 선생님에 대한 신뢰가 더욱 컸기 때문이었습니다. 첫번째 화두에 대해 맞는 답을 찾을 수 없어 무척이나 위축되었지만, 그 과정 속에서 저는 일생동안 한 번도 제대로 대면하지 않았던 저 자신과 대면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존심이 속된 말로 하늘을 찔렀기에 무려 6번이나 제 성질을 못이기고 병원에 입원했던 저였습니다. 평소에는 더 없이 우아한 듯 보이는 사람이었지만 저의 어머니는 6번의 입원 과정에서 패악을 부리는 저를 온전히 감당해 내야 했습니다. 스스로 완벽하고 싶었으나 그렇지 못한 저를 보는 것이 괴로워 차라리 죽여 달라고 의사에게 애원했던 저를 바라보는 부모님과 저의 가까운 지인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 저를 항상 사랑하고 지지해 주던 저의 남동생이 오랜 지병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저는 저의 모든 세계관이 무너지는 극도의 고통을 겪었습니다. 스스로 지구를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는 위대한 비전을 위해 살고 있다고 자만했던 저는 가장 가까운 피붙이인 저의 동생을 살리지 못했다는 무시무시한 현실을 대면할 수 없었고 하늘과 땅과 사람을 원망했습니다. 그 원망이 지나쳐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고 잠을 잘 수 없었고 숨을 쉴 수 없었습니다. 20년 이상 함께 했던 직장에서 퇴사했고 극도의 혼란 상태에 빠졌습니다.

저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동생을 보며 아기처럼 우시는 아버지를 보았고 그 곁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 곁에 있겠다고 약속했고 곁에 있었지만 거목과도 같았던 아버지는 한 집안의 가장이자 장손이며 유일한 아들이었던 남동생의 죽음 후 수면 장애로 매일 소주잔을 기울이셨고 동생이 돌아 간지 3개월도 채 안되어 식도암 3기로 입원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저와 어머니는 동생의 부재와 아버지의 암이라는 무시무시한 현실 속에서 매 순간 숨을 쉬고 걷는 것 자체가 두려웠고 힘들었습니다. 저는 가장 친한 친구에게 너무도 괴로운 나머지 안락사를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친구는 차라리 제가 처음으로 저의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 다행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저의 감정을 솔직히 대면하기도 힘든 자존심 덩어리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생사를 오가는 식도암 수술을 마치고 온 몸의 근육이 빠져나간 아버지는 몸에 관을 꽂고 어머니와 제가 없으면 액체로 된 영양식조차 드실 수 없는 처절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미식가였고 애주가였고 국어학자 이셨고 고등학교의 존경받는 교장 선생님이셨고 몇 권의 책을 낸 작가였던 멋진 아버지나의 아버지너무도 자랑스럽고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그 아버지는 병원에서 아직도 항암치료를 해야 하고 또다른 시술을 해야 한다며 병원에 가셔야 하는 그 날 새벽 동생처럼 1장의 유서를 남기고 새벽의 고요함을 가르며 저 세상으로 가셨습니다.

평소에 큰 소리를 내지 않는 어머니는 새벽 6시에 집안이 떠나가도록 저의 이름을 부르며 아버지가 자살하셨다고 비명을 지르셨습니다. 형사들이 집에 왔고 저는 아버지 장례식장에 가기 전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아야 했습니다.

혹시 보험금 때문에 무슨 일을 벌인 것은 아닌지 캐묻는 형사를 보며 형사 반장님께서 뻔한 자살 사건을 왜 그렇게 처리하냐며 저를 장례식장으로 가도록 허락했습니다.

저는 눈물조차 흘릴 수 없었습니다. 남동생 즉 상주가 없는 장례식장에 남동생의 아내인 올케가 왔고 어린 조카에게는 충격이 클까 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말할 수도 없었으니까요. 결혼하지 않은 것이 그토록 가슴 아픈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이럴 때 든든한 사위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버지께서 그토록 제가 결혼하기를 바라셨는데

장례를 치르고 집에 어머니와 저만 있었는데 제가 다른 방에서 있는 동안 어머니의 비명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버지의 영정을 보고 그토록 강인했던 어머니가 공황장애 증상이 생기신 것입니다. 저와 상의 끝에 어머니가 정신과 상담을 받고 약을 드시면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저도 어머니도 음식이 넘어가지 않고 소화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다시 기어가다시피 단월드의 문을 두드리고 자미원의 깨달음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한 때 미국에서 잘나가던 저였지만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자미원의 깨달음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자경선생님은 삶과 죽음, 스승과 제자, 부모와 가족과 자신, 그리고 저의 철옹성 같은 자존심의 벽을 하나하나 바라볼 수 있도록 인내심과 정성과 사랑으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저를 깨달음수련 내내 지켜봐 주시고 성장시켜 주신 자경선생님의 은혜를 저는 갚을 길이 없어 고마운 마음에 약간의 기부를 하였습니다.

이제 깨달음 수련을 졸업하면서 저는 다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매일 매순간이 충만하고 행복합니다. 그리고 건강을 위해 저를 매일매일 단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제일 힘들어했던 그 일, 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믿고 사랑하는 그 일을 지금 이 순간 하고 있습니다.

깨달음 수련의 가치는 사실 돈으로는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안락사를 원했던 사람이 다시 날개를 펴고 날 수 있도록 함께 해 주셨으니까요.

부족하지만 이 나눔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많은 분들의 가슴 속으로 흘러 들어가 깨달음 수련이라는 생명수를 마시고 다시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하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이 글을 마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계셔서 행복합니다.

 

                         2020120일 월요일

 

                                               당신을 사랑하는 저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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